공납은 지역 특산물을 바치는 거예요. 백성들에게는 공납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의 특산물은 귤이잖아요.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옛날에는 귤이 무척 귀했어요. 운송 수단도 변변치 않은데 한반도의 가장 남쪽, 그것도 섬에서 가져와야 했으니 희소가치가 클 수밖에 없었죠. 왕이 공신이나 과거시험에서 일등을 한 장원에게 주는 하사품이 귤 몇 알 정도였습니다. 하사품을 받은 사람들은 귤을 가지고 와서 가족들과 한 쪽씩 나눠 먹었어요. 그 정도로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제주도 백성들은 당연히 귤을 공납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귤 100상자 하는 식으로 할당량이 다 있었어요. 귤나무에 귤이 열리기 시작하면 관리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직 콩알만 한 귤을 모조리 세어서 나중에 몇 개를 제출하라고 미리 정해줍니다. 100상자를 채우기 위해 집집마다 분배를 해주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 열린 귤이 모두 수확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썩는 것도 있고, 떨어지는 것도 있고, 새나 동물이 몰래 먹는 경우도 있겠죠. 게다가 제주도에는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잖아요. 하지만 그런 변수는 고려하지 않아요.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썩은 귤을 조정에 바칠 수도 없어요. 공납용 귤을 준비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붓는 농민도 많았다고 합니다. 몰래 귤나무를 죽였던 거예요.
사람들이 공납 때문에 괴로워하니까 수수료를 받고 공납을 대신 내주는 대행업자까지 등장합니다. 요즘도 대행 업체들이 있잖아요. 조선시대에도 그런 사업을 하는 자들이 생겨난 거죠. 이 사람들을 방납업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방은 ‘막을 방防’ 자예요. 공납을 막아준다는 거죠.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었던 백성들은 곧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됩니다. 방납업자들이 공납을 걷는 사또와 결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또는 방납업자의 특산물만 받아요. 백성들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아도 무조건 방납업자에게 공납을 맡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당연히 방납업자들은 마음대로 값을 올립니다. 나중에는 도를 넘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져요. 귤이 한 상자에 1만 원이라면 방납업자는 귤 한 상자를 내주면서 10만 원을 받는 식이에요. ‘그럴 바에는 그냥 내가 어떻게든 마련하겠다’ 해서 사또에게 직접 귤을 바치면 사또는 안 받죠. 이건 상처가 났고, 이건 색깔이 안 좋고, 이건 맛이 없어 보이고……. 별의별 트집을 다 잡아요. 이런 걸 어떻게 임금님에게 바치느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칩니다.

 

결국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방납업자들의 10만 원짜리 귤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 방납업자들이 사또에게 사례비를 주는 거죠. 그 돈을 당시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인정人情’이라고 했어요. “너 왜 이렇게 인정이 없냐?” “사또, 이게 다 인정입니다.” 이랬던 거예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뜻하는 말이지만, 저는 인정이라고 하면 부정부패가 떠오릅니다. 이 인정 때문에 백성들이 죽어났어요.

 

역사의 쓸모 | 최태성 저

“인정이 없어!” 인정(人情)의 기원_역사의 쓸모, 최태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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