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톨게이트에서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내주었다. 그랬더니 ‘앞 차에서 이미 지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차의 운전자 역시 주저하지 않고 그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내주었고 그 행렬이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나의 지인은, 용감하게도 그 선행을 직접 실행해보기로 결심했다. 용인 주변의 한 톨게이트,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지불했다. 과연 다음 차도 그와 같은 선행을 이어갈 것인가? 책에 나왔던 미담처럼 이 선행도 훈훈한 일화로 남게 될 것인가? 그렇게 통행료를 대신 지불하고 앞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뒤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쫒아오더라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니 속도를 낮추라는 신호 같아서, 차량이 뜸해진 틈을 타 옆으로 붙는 그 차량과 보조를 맞추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창문을 내리라는 수신호를 보냈고, 그가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내리자마자 상대편 운전자가 이렇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돈을 내줘! 어디서 돈 자랑이야!”

순식간에 통행료 900원 내주고 돈 자랑하는 나쁜 놈이 되었다. 지인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과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지만 운전하는 내내 당황하고 속이 상해서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나의 지인에게 욕을 퍼부은 그 사람은 타고난 성격이 원래 괴팍한 걸까? 아니면 그날 유난히 힘들어서 감정조절이 안 된 걸까?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을 통해서 그가 얽매여 있는 공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는 있다.

 

아마도 그는 과거에 돈 때문에 심한 상처를 받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과 관련한 일로 자존감을 다쳤을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돈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고, 그 공식을 건드리는 사건을 만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게 되는 것일지도.

 

말 그릇 | 김윤나 저

톨게이트 사건_말 그릇, 김윤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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